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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SU PRESS] 교수업적 돌아보기 : 서울 발레시어터 창단자 발레 제임스전 교수

  • 작성자 김세준
  • 작성일 2021-11-12
  • 조회 3611

발레리노가 된 회계학도, 한국 발레의 새 시대를 열다

 우리나라에서 발레가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1990년대그 중심에는 제임스전 교수가 있었다그는 1995년 설립된 우리나라 최초의 순수 민간 발레단 서울 발레시어터의 창단 멤버다제임스전 교수는 그곳에서 수많은 작품을 만들고 공연하면서 세계에 한국의 발레를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예술위원상임 안무가예술 감독으로도 활동한 그는 현재 우리 대학 공연예술학과 교수로서 한국 발레의 명맥을 이어나가고 있다.

 

제임스 전 교수
제임스 전 교수

 

새로움을 위해 시작한 연극새로운 삶의 방향을 제시하다

 미국에서 회계학을 공부하던 제임스전 교수는 취미로 들어간 연극부에서 처음으로 발레를 접했다늦은 나이에 시작했음에도 탁월한 재능을 보였던 그는 줄리아드 예술 대학 무용과에 진학했다이후 모리스 베자르플로리다유니버설 등 다양한 발레단에서 활동하면서 그 실력을 인정받았다.

 

Q. 안녕하십니까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A. 반갑습니다저는 공연예술학과 교수로 발레를 가르치고 있는 제임스전입니다기회가 될 때마다 무대에 발레 작품도 올리고직접 춤도 추고 있습니다.

 

Q. 꾸준히 활동을 하셨군요많은 공연이 관객을 최소한으로 동원해 상황이 어려웠을 듯합니다.

A. 지난 3월에 현대춤협회에서 작가 12인전이라는 무대가 열렸는데제가 거기에 초대받았어요무대에 올라가서 춤을 췄죠여러 제한이 있긴 하지만아주 오랜만에 무대에 올라가니까 참 좋았어요.

 

Q. 준비하고 있는 또 다른 공연이 있나요?

A. 곧 수원에서 수원 발레 축제가 열려요. 6년 가까이 진행돼온 축제인데앞서 말한 공연에서 제가 보인 작품이 좋다고 하더라고요그래서 그 작품으로 8월 20일 날 수원 발레 축제에서 공연을 해요.

 

Q. 많은 관객또 우리 학우들도 관람하면 참 좋겠네요.

A. 그렇죠그런데 이게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확진자가 너무 많이 나오고 있어서계속해서 상황을 지켜봐야 할 것 같아요.

 

Q. 대학교에서 회계학을 전공하다가 늦게 발레를 시작했다고 들었습니다하던 일을 놓고 새로운 도전을 택하기란 쉽지 않잖아요.

A. 새로운 것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항상 있었어요제가 수학에 관심이 많았는데회계사였던 저희 형이 그걸 보고 권유해서 저도 회계를 배운 거였거든요근데 저는 회계 말고도 항상 다른 무언가를 하고 싶었어요그래서 연극반에 들어갔는데교수님이 연극을 하려면 춤도 좀 잘 춰야 한다고 하시더라고요춤을 배우려고 다양한 장르를 살펴봤더니현대무용재즈 같은 것들은 전부 바닥에 몸을 굴리면서 격렬한 게 너무 힘들게 보였어요.

 

Q. 그리고 눈을 돌린 순간발레가 보였던 거군요.

A. 맞아요클래식 음악과 춤의 조화가 아주 아름답고 우아하게 느껴졌어요그렇게 발레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Q. 둘 다 몸을 움직이고 연기를 펼친다는 점에서 발레와 연극이 비슷하게도 느껴집니다그런데 연극이 아주 보편적인 취미는 또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데요예술가의 기질을 타고난 건가요.

A. 그렇다고 할 수 있죠옛날부터 영화도 좋아했고노래도 좋아했거든요게다가 저희 형이랑 누나들이 노래를 잘해요형은 록 밴드를 했었고누나도 성악을 했을 정도였으니까요어렸을 때부터 그런 광경을 쭉 봐왔으니까 저에게도 영향이 간 것 같아요제가 고등학교 때는 록이 미국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거든요저니이글스 등 록 밴드들의 공연을 직접 보러 가면서 예술에 친숙해졌죠그렇게 취미로 연극반에 들어간 거예요.

 

Q. 거기서 운명이 바뀌었고요.

A. 그땐 연극을 전문적으로 한다는 마음도 아니었고매일 회계만 하다 보니까 심심해서 들어간 거였어요그러다가 발레를 접하면서 푹 빠져버린 거죠.

 

 

“Just do it!”

가족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낯선 땅에서 본격적으로 발레를 배우게 된 그는 다른 사람들보다 몇 배로 연습했다책을 읽을 때도샤워할 때도언제 어디서든 발레를 놓지 않았다무리한 연습 탓에 무릎에 부상을 입은 적도 있지만하늘을 향한 그의 점프는 계속됐다.

 

Q. 어릴 때부터 발레를 한 사람들과의 격차를 좁히기 위해 언제 어디서든 연습을 했다고요단순한 의지만으로는 힘들었을 것 같은데교수님만의 목표가 있었나요?

A. 목표라기보다는 그냥 미친 듯이 했어요제가 어릴 때 태권도를 배워서 유연성은 있었지만그래도 어릴 때부터 발레를 시작한 친구들에 비해서는 뻣뻣하잖아요그래서 매일 연습했어요영화 빌리 엘리어트’ 있죠거기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시도 때도 없이 연습했어요나이키 광고를 보면 그런 말이 나오잖아요. ‘Just do it’. 정말 무조건 연습하는 것밖에 없었어요미국에는 집마다 차고가 있잖아요아침에 일어나서 거기에서도 하고학원에 가서도 했었죠그 친구들이 평상시에 2시간 연습을 한다면 저는 4시간씩 정말 막무가내로 했어요.

 

Q. 교수님도 발레를 하면서 분명 부상이나 슬럼프로 힘들었던 적이 있었을 텐데요역경의 순간을 돌이켜 본다면요?

A. 제일 힘들었을 때가 생각나요줄리아드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오른쪽 무릎을 다쳤거든요한 3개월 동안 너무 연습을 많이 하다가 다친 거예요그걸 보고 친구들이 장난으로 저를 카미카제(세계2차대전 당시 자폭 공격을 수행한 일본의 특공대)’라고 불렀어요남들 눈에 자폭으로 보일 만큼 몸을 혹사했습니다그때 식당에서 웨이터 아르바이트도 하고 있었는데다치고 나니까 알바를 하는 게 힘들었던 기억이 나네요.

 

Q. 입학하자마자 부상이라니정말 난처했겠는데요.

A. 그땐 뒤로 갈 수가 없었어요멈출 수도 없고그냥 가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포기하고 물러나면 다 끝나게 되잖아요줄리아드라는 어려운 대학에 들어갔는데다쳤다고 그만둘 수는 없었어요그래서 침을 맞고 재활을 열심히 했습니다더디게라도 낫긴 하더라고요.

 

Q. 말씀만 들어도 타지에서 힘들었을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집니다.

A. 그런데 지금은 되게 힘들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그때는 힘들다고 생각을 못 했어요낮에는 발레 연습하고 밤에는 웨이터 일하면서 돈을 버는 게 당연한 거였죠그때는 힘들다그런 게 아니라 그렇게밖에 할 수가 없으니까내가 앞으로 나아가는 데 필요한 과정이니까 그냥 했었어요지금 다시 하라면 절대 못 하죠그냥 한 거예요그냥.

 

Q. 어떻게 보면 교수님에게 발레는 인생 제2막과도 같은데요발레를 통해 실현한 인생관이 있을까요?

A. 발레를 하다 보니까인내심과 기다림을 배웠어요발레의 동작과 자세가 하루아침에 완성되는 게 아니잖아요스포츠도 마찬가지죠저는 발레를 스포츠라고 생각하거든요그만큼의 노력과 훈련이 되지 않고서는 그 동작을 해낼 수 없기 때문에요열심히 연습해야지만 완벽하게 할 수 있고하고 싶을 때만 연습하는 게 아닌 점들에서 꾸준함을 깨닫게 됐어요매일 꾸준히 노력하며 긴 세월을 보낸 부분들이 인생에서 가장 도움이 됐습니다.

 

 

우리도 잘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작품 '바람처럼' 의 안무 중 일부분
작품 '바람처럼' 의 안무 중 일부분

 

 한국에 온 그는 우리 작품을 만들어 해외에 우리 작품을 세우자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서울 발레시어터를 창단했다그리고 <현존 : Being>, <RAGE>, <백설 공주등 뛰어난 작품들을 제작해 국내외에서 실력을 인정받았다이후 콜롬비아 칼리에서 소외계층을 대상으로 한 발레 교실을 운영한 그는 본격적으로 사회공헌 예술 교육의 길로 들어섰다.

 

Q. 발레의 대중화라는 목표로 순수 민간 발레단인 서울 발레시어터를 창단했죠하지만 민간 발레단인 만큼 여러 측면에서 고충이 있었을 것 같아요인원이나운영 과정 등에서요.

A. 재정이 가장 부족했죠당시에저와 제 아내는 단원들한테 기본적으로 4대 보험을 적용해 주고 월급을 꼬박꼬박 주는 걸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어요사무직원부터 무용수까지 전부 관리하려면 매달 나가는 돈에 책임이 생긴 거죠공연이 많으면 공연비를 통해서 그걸 다 메꿀 수 있는데그게 안 될 때는 또 돈을 빌리고 그랬어요.

 

Q. 그 어려움이 이해가 됩니다.

A. 세 번 정도 위기가 왔었어요첫 번째로 IMF가 왔을 때두 번째로 금융위기가 왔을 때마지막으로 사스나 메르스 같은 전염병이 돌았을 때예요너무 힘들었어요그래도 좋을 때도 있었어요. CJ에서 후원을 받고는 했는데그때 도움이 많이 됐죠지금 와서 생각하면 우리가 어떻게 했지라는 생각이 들어요지금은 발레단을 후배가 운영하고 있는데코로나 때문에 힘들어하고 있어요.

 

Q. 서울 발레시어터에서 한국 최초로 창작 레퍼토리를 해외에 수출했죠꿈이 결실을 맺은 순간이었겠군요.

A. 정말로요제가 줄리아드 대학에 다닐 때창작의 중요성에 대해서 많이 배웠어요유럽에서 춤출 때 창작을 많이 했었고요그런데 한국에 돌아와보니유니버설 발레단이랑 국립 발레단이 전부 해외에서 사들인 작품들로만 공연을 하는 거예요그런 상황을 보면서 우리가 왜 창작 작품을 못 올리냐’, ‘우리도 충분히 낼 수 있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그게 서울 발레시어터를 창단한 계기이기도 해요우리가 뭐라도 만들어서 잘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요그렇게 창작 활동을 하다가 운이 좋게 미국 네바다 발레시어터 단장이 제 작품을 보고 사게 된 거죠.

 

Q. 수없이 많은 무대를 만들고 진행했습니다무대를 준비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는 무엇인가요?

A. 무엇보다도 제일 중요한 건 무용수들이랑 무대 스텝들이죠그뿐만 아니라 세트의상조명 같은 요소가 하나가 돼야만 발레가 완성되는 거고요그렇지 않고서는 진행이 될 수 없죠거기에 더해서 기획과 홍보를 담당하는 팀들도 잘해야 합니다뭐 하나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고하나만 중요하게 생각해서는 안 될 만큼 굉장히 일이 많아요종합예술이에요.

 

Q. 지금까지 수십 편이 넘는 공연의 안무를 지도하고 직접 출연했는데요어떤 공연이 가장 기억에 남나요그 이유도 궁금합니다.

A. 저한테는 다 소중한 공연이지만언론사뿐만 아니라 무용계에서 많은 주목을 받은 무대는 1995년 발표한 <현존 : Being>이에요모두가 처음 보는 색다른 공연이었거든요플라잉도 하고 인라인스케이트도 타고 록힙합 음악이 나오고 그랬어요그리고 1996년에 <현존2(Being2)>를 올렸고이어서 1997년에 <현존3(Being3)>를 완벽하게 만들었어요그때 연극오페라 등 모든 분야에서 활동하던 사람들이 공연을 보러 왔습니다.

 

Q.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고 발레에 임하나요교수님의 철학을 이야기 하자면요.

A. 아까 말했듯이 저는 우리나라도 이렇게 창작할 수 있는 발레단이 있다는 것을 말해주기 위해서 서울 발레시어터라는 단체를 만들었어요단체를 만드는 데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갈 곳이 없는 많은 무용가들이 이런 발레단에 들어와서 춤을 출 기회를 받게 돼요더불어서 무대 연출과 의상 등 다양한 팀이 일자리를 얻게 되고요어떻게 보면 발레단 하나 덕분에 직업 창출이 되고 많은 사람이 먹고 살 수 있게 되는 거죠이런 효과를 이끌어낼 수 있게끔 하는 것이 제 가치관이에요많은 사람들이 일할 수 있는 단체가 늘어나야만 문화가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그런 단체가 없으면 문화 강국이 될 수 없죠.

 

Q. ‘홈리스 발레 교실’, ‘더불어 행복한 발레단’ 등 노숙자나 미혼모성폭력 피해자와 같은 소외계층을 위한 발레 교육과 공연을 진행했어요다양한 사회공헌 예술 교육을 진행한 계기가 있었나요?

A. 콜롬비아에 칼리라는 지역이 있는데제가 거기에서 발레 교육을 진행했었던 적이 있어요나라에서 운영하는 발레 학교인데학생들에게 모든 비용을 다 제공해주더라고요그 학교에는 돈이 있는 아이들은 절대 들어올 수 없어요범죄자나 매춘부의 자녀처럼 어려운 아이들을 모아서 8년 동안 교육하며 무용가로 만드는 거예요거기서 나온 무용가들이 다 세계로 가요그리고 다시 학교로 돌아와서 선생님으로 활동을 하죠그걸 보고 단체라고 해서 춤만 잘 추면 되는 것이 아니라지역 사회와 어울려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그렇게 지역 사회를 위한 예술 교육을 진행하게 됐죠.

 

Q. 나라와의 협력을 통해 소외계층 아이들을 위한 발레 교육을 시행하는 거군요.

A. 다른 방법도 있어요어느 지역에 야구팀이 있으면그 야구팀이 지역 사회 발전에 있어서 정말 중요하잖아요그것처럼 미국이나 유럽의 무용단은 지역 사회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해요개인이 무용만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고단체라면 그 지역 사회에서 내가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고 움직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거예요그런데 우리나라는 무대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단체들이 많아요원래 그러면 안 되거든요그 지역 사회에서 예술을 통해서 소통하고 아이들한테 도움을 준다면정말 재능 있는 친구들을 발굴할 수 있고 다양한 가치를 창출할 수 있어요.

 

Q. 해외 발레단은 이미 지역 사회 발전의 역할을 하는군요?

A. 그렇죠옛날 80년대 미국의 할렘 있죠지금은 많이 좋아졌지만옛날에는 정말 위험한 동네였거든요그런데 거기에는 할렘 무용단이 있어요. 70년대에 뉴욕시 발레단에 있던 흑인 무용수가 할렘에 가서 지역 사회를 위해 설립한 거예요그렇게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무용 교육을 통해 훌륭한 무용가를 만들었단 말이에요이처럼 해외에서는 지역 사회에 희망을 주는 단체가 많아요우리나라도 그럴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죠.

 

 

기회라는 것은 누구에게나 주어져야 해요.”

  자식처럼 키워온 서울 발레시어터를 떠난 제임스전 교수는 프리랜서로 활동했다그리고 지금발레단의 부재발레 교육 환경 조성문화 인식 등 보완해야 할 점이 많은 한국의 발레계를 이끄는 그의 여정은 현재 진행형이다.

 

Q. 2017년에 약 20년 동안 활동해온 서울 발레시어터를 떠났는데요현역에서 은퇴할 때까지 활동해도 됐을 텐데그런 결정을 내린 이유가 있을까요?

A. 물이 고여 있으면 안 되잖아요대부분의 예술관과 안무가들은 그 단체에 20년 이상 있지 않아요이게 더 나쁠 수도 있지만극복해야 한다는 거죠저와 제 아내는 항상 그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영원히 있으면 안 된다는 것을요.

 

Q. 발레단에서 물러난 이후에는 어떤 생활을 했나요?

A. 새로운 비전과 함께 새로운 발레단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었어요그래서 저는 외부에서 게스트 같은 역할로 도와주고학교에 좀 더 신경 쓰고 혼자 작업했습니다그래도 제 작품들이 서울 발레시어터에 100개 넘게 있어요그래서 제 작품을 할 때는 제가 가서 도와주면서 지냈어요.

 

Q. 교수님의 마지막 꿈이 소외계층 아이들을 대상으로 무용 예술 교육을 지원하는 아카데미를 만드는 것이라고 들었습니다.

A. 분명히 재능이 있는데 기회가 없는 아이들이 있을 거예요그럼 기회를 어떻게 줄 것인가를 생각해봐야 해요저는 그걸 돈으로 해결하기보다는직접 가르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그건 발레뿐만 아니라무용성악음악도 다 똑같아요제일 중요한 것은 미래의 젊은이들에게 기술을 가르칠 수 있는 교육 환경이 적립되어야 한다는 겁니다그렇게 교육받은 친구들이 성공하면서 교육 시스템들이 더 발전하는 거죠저는 제가 한국에서는 무용을 못 했을 거라고 말해요줄리아드에서 저를 뽑은 이유는 저의 가능성을 봤기 때문이에요재능과 희망을 알아보는 교육 제도가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에 기회를 얻고 발레를 할 수 있었던 겁니다우리나라에도 이처럼 소외된 아이들에게 날개를 달아줄 시스템이 보편화됐으면 좋겠어요.

 

Q. 아이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고 싶은 거군요.

A. 맞아요최근 왜 우리 사회에 불만이 자주 생기냐면, ‘쟤는 되고 나는 왜 안 되느냐는 것 때문이에요돈이 많은 아이는 좋은 교육을 받을 거예요그건 나쁜 게 아니죠다만상황이 어려운 아이들은 동등한 기회를 얻지 못하는 게 문제가 되는 거예요자기가 처한 상황 때문에 꿈을 포기하게 된다면 얼마나 억울하겠어요기회라는 것은 누구에게나 주어져야 해요그 기회를 줄 수 있는 것은 교육밖에 없다는 거예요전문 교육 기관을 만들어서 아이들을 공부시키면기회의 평등이 만들어지고 불만이 줄어들 거라고 생각해요.

 

Q. 다양한 기관에 의견을 내보진 않았나요?

A. 제 말이 다른 데서는 잘 안 통하더라고요제가 예술위원회에 있을 때도 얘기했지만쉽지 않은 일이었어요하지만 우리나라도 이제 선진국이잖아요나라기업지역 사회가 조금만 관심을 준다면 시스템을 충분히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해요발레뿐만 아니라 다양한 직업군에서도 말이죠.

 

Q. 이전부터 직업 발레단의 확대와 발레 교육 환경 조성의 중요성에 대해 역설해왔는데현재 한국의 발레 환경은 이전보다 나아졌나요?

A. 많이 좋아졌죠제가 발레를 할 때만 해도 한국에서는 발레를 잘 몰랐는데지금은 많은 사람이 발레를 알고 있고 훌륭한 무용가들도 많이 나왔어요파리 더 오페라아메리칸 발레시어터몬테카르 발레단 등 우리나라 출신 무용가들이 세계적인 발레단에서 활동하고 있거든요대단한 거죠많은 콩쿠르에서 상을 타고 있고요지금은 세계에서 우리나라의 발레를 인정하고 있어요그 대신 이제 외국 사람들이 이렇게 말해요나라에서 뛰어난 무용가가 많이 나왔는데 왜 프로 발레단이 많이 없냐고요방금 말한 것과 비슷한 맥락이죠이런 부분들은 더 발전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Q. 앞으로 어떤 부분이 더 발전되어야 할까요?

A. 우리나라는 아직 후원 제도나 예술 문화에 대한 인식이 낮잖아요우리 대학 학생들만 해도발레 공연을 보러 가는 사람이 몇 명이 있겠어요외국 같은 경우는 영화를 보러 가는 것처럼 발레 공연을 보는 문화가 발달해 있어요우리나라에도 그런 환경이 정착되려면 먼저 교육이 잘 이루어져야 해요.

 

Q. 교수님의 가치관이 관통하는 말씀이네요발레의 보편화와 평등화를 위한 교육이요.

A. 제가 미국에 있을 때는 프로 발레단이 학교에 가서 발레 교육도 하고아이들도 학교에서 공연을 보러 오고 그랬어요이전에 접한 경험을 토대로 훗날에도 발레 공연을 자연스럽게 보러 가게 되는 거죠후원도 마찬가지예요어렸을 때 후원을 해봐야지 후원할 줄 알지한 번도 안 하는 사람에게 후원하라고 하면 못하죠우리나라는 그런 교육이 아직 부족한 거 같아요.

 

Q. 교수로서의 제임스전은 교육에 있어서 어떤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나요?

A. 모름지기 교육이라면 인내심 있게 기다려줘야 되고배려하면서 희망을 주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포기하지 않게 도와주고요한 학생이 어떤 것을 못 한다고 해서 다른 것도 못 한다고 할 수는 없잖아요그런 것들에 중점을 두고 지도하고 있어요그리고 저는 학생들한테 꾸준함이 중요하다고 말해요자기가 하고자 하는 일은 계속해서 가야 한다는 거예요그걸 가르치는데쉽지는 않더라고요그래서 이제는 말로 하지 않고 행동으로 보여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Q. 언제까지 발레를 할 생각인가요?

A. 제 몸이 허락할 때까지 무대에 설 거예요제 아내가 그렇게 말했어요. ‘창피만 주지 마라’. 그래서 저는 제가 힘이 다할 때까지 계속할 마음이에요.

 

Q. 인터뷰를 마무리하며남기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면 자유롭게 부탁드립니다.

A. 방금까지 제가 말한 것처럼사람들에게 좀 더 많이 기회를 줬으면 좋겠어요저도 발레를 늦게 시작했지만 좋은 기회를 얻었기 때문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거든요제가 다녔던 발레 학원에서는 저한테 장학금을 줬어요저의 가능성을 보고 도와준 거예요줄리아드에 입학할 등록금이 없을 때에도 학교에서 저를 도와줬고요해외에는 이런 것들이 잘 돼 있어요저한테 한 줄기의 희망을 줬단 말이죠우리 사회나라기업이 아이들에게 기회를 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싶어요.


한국체육대학보 장재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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